[조일훈 칼럼] 그래도 세상은 변하고 있다

입력 2023-09-27 16:59   수정 2023-09-28 00:20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기사회생했다. 민주당은 이 대표 체제로 내년 총선을 치를 가능성이 커졌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피차간 혈전이 불가피하다. 이미 지난 1년5개월 동안 격렬하게 싸운 터라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외교 안보 경제 역사관 등 모든 영역에서 지향점이 달랐기에 애당초 협치는 불가능했다. 윤 대통령은 전임 정부를 반(反)자유·반문명·반시장으로 규정하고 헌법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복원을 서둘렀다. 건국 정통성 부정, 친중·친북 외교, 재정 포퓰리즘, 입법권 남용, 구조개혁 회피, 반시장적 규제입법, 징벌적 세금 등 전체주의적 특질이 강했던 전 정부 유산들이 속속 수술대에 올랐다.

하지만 민주당은 국회를 장악한 현실적 권력이었다.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연패를 거듭했음에도 막강한 입법권과 의결권을 앞세워 국정 발목을 잡았다. 국회 통과가 필요한 개혁법안은 입안 단계에서 대부분 좌초됐다. 시행령만으로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기에 노동 교육 연금 세제 등 구조개혁 방안들은 내년 총선 이후로 미뤄졌다. 민주당은 오히려 재정적 부담이 크고 충분히 논의가 이뤄지지도 않은 ‘양곡관리법’ ‘간호법’ 등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켜 거부권을 행사하는 대통령에게 부담을 줬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낮게 나오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민주당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세력 기반이 정치 팬덤과 노동조합, 좌파단체 등에 폭넓게 포진해 있고 결집력도 높다. 바늘 같은 빈틈을 찾아내 종국에는 둑을 무너뜨리는 ‘프레임 전쟁’에도 능하다.

윤 정부에 대한 여론의 인색한 평가가 민주당의 건재를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윤 정부 집권 이후 민주당은 온통 ‘이재명 방탄’에 매달렸다. 주요 국정 현안들에 대해 반대와 투쟁으로 일관하면서 총리와 장관 탄핵도 서슴지 않았다. 그사이에 세상은 많이 변했다. 사람이 바뀌고 정책이 바뀌더니 이제 법과 제도도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지난 26일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이 위헌 결정을 받은 것은 상징적 단면이다. 민주당이 2020년 대북굴종법안, 김여정하명법 등의 숱한 논란을 야기하며 통과시킨 법안이 3년여 만에 폐기된 것이다. 같은 날 헌법재판소가 이적단체 고무·찬양을 금지한 국가보안법 7조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것 역시 지난 정부에서 광범위하게 용인된 ‘적대세력의 침투’를 차단해야 한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념이나 정권적 이익을 위해 저질러진 온갖 부조리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민들은 탈원전으로 한국전력이 역대급 부실기업으로 전락한 사정과 구조적으로 만연한 태양광 사업 비리가 한 묶음이라는 것을 알게 됐으며, 윤미향 횡령과 좌파 단체들의 보조금 착복이 구조적 문제였음을 깨닫게 됐다. 소득주도성장이 한계에 부딪히자 청와대가 직접 나서 ‘통계주도성장’으로 분식을 시도했다는 감사원 발표도 ‘세상만사 언젠가 뽀록난다’는 속설을 떠올리게 한다.

변화는 움직이는 자의 것이다. 한국 대통령이 ‘글로벌 중추국가’를 표방하면서 전장터로 날아가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국내 적잖은 반대 여론에도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를 서두른 덕에 한·미 동맹은 더 견고해지고 북·중·러에 맞서는 한·미·일 연대감도 강해졌다. 괴담 역풍에도 국내 수산물 소비는 정상을 되찾았고 기업들은 과거처럼 정치권 눈치 보지 않고 대놓고 소비 캠페인을 한다. 그 강했던 독일 제조업이 원자력발전을 포기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탄소중립 원조 국가인 스웨덴이 43년 만에 탈원전 포기로 돌아서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첨단산업 공급망이 자유진영 중심으로 속속 재편되는 가운데 인공지능(AI)발 혁명이 전 세계 산업 지형도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민주당은 이 모든 변화 앞에서 장차 우리나라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안과 비전을 제시한 적이 없다. 가끔 민생과 경제를 외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나랏돈 풀어 공짜 많이 뿌리자는 주장들뿐이었다. 윤 정부를 향해 편향 외교라고 비판하면서도 반일 캠페인에만 열을 올렸다. 무기 거래 의심을 사고 있는 북·러 정상회담에 대해선 비판 한마디 내지 못했다. 균형 외교가 아니라 곤란하면 입을 다무는 회색지대로 숨어들고 있다. 그러니 그 많은 의원을 두고도 세상 변화를 진지하게 좇아가지 못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도도한 물결 속에서 혹여 혼자서만 거꾸로 노를 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방탄도, 총선 승리도 좋지만 세상 공부도 해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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